[잡담] 게임업계 뒷이야기 - 03

J-너스 작성일 06.02.27 1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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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내공 : 쓰레기


이번엔 제가 알고있는 몇 안되는 PC게임쪽 이야기입니다.
제가 담당이 콘솔이다 보니 PC쪽 일은 상대적으로 큰 사건 아니면 알 수가 없는지라 즐거운 애피소드는 별로 없네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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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 다 그런거지 뭐...
요즘 온라인 게임에 대해서 말씀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만, 제가 겪은 이야기 하나 해 드리죠.

VGL에서 기자일을 하고 있을 당시, VGL필자였던 분 중 한분이 모 온라인 게임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사실 필자 일이란게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수익이 적은 일이라서 저희 입장에선 "쓸만한 필자 한명 또 빠졌네" 라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순순한 의미에서 축하를 해 줬었지요.

그런데 얼마가 지난 후, 이 분이 사무실로 놀러온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거라 반갑게 맞아들였는데, 이 양반 완전히 피곤에 지친 몰골이더군요. 필자일 하면서 며칠간 밤을 세웠어도 이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는데... 하면서 왜 그런지 물어봤더니 한숨 팍 쉬면서 대답을 해 주더군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그분이 입사한 회사가 회사에서 신작 게임을 기획하게 되었는데, 이게 아무래도 힘들더랍니다.
MMORPG라는 것이 이미 국내에선 포화직전의 상태였기에 일반적으로 나올만한 아이디어는 다 나온 상태이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컷던 것이지요. 덕분에 기획팀은 아이디어 짜 내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는데, 그나마 뭔가 쓸만하다 싶은 아이디어가 나와서 윗대가리에게 상신해 보면 "이건 써먹을게 못된다"라며 계속 퇴짜만 먹더랍니다. 기획회의는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하고, 있는머리 없는머리 굴려가며 아이디어 짜 봐도 퇴짜만 먹으니 기력이 날 리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기분도 풀겸, 정신무장도 새로 할겸 해서 전에 일하던 저희 사무실에 들렸던 것이지요.

솔직히 보고있는 쪽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사람이 망가져 있더라구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초기 기획단계란게 상당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물론 뛰어난 그래픽과 조작성, 사운드 등을 실현시키면 어느정도 유저들에게 먹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픽, 사운드는 별로여도 뛰어난 아이디어와 잘 짜여진 시스템을 가진 게임"이 "그래픽, 사운드만 뛰어났지 시스템은 犬판 5분전인 게임"보다 더 재미있다는 것은 다들 느껴보셨을 테니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죠.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테니 일단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A라는 게임 제작사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얻고 있고 실적도 높은 회사죠.
그런데 이 회사가 자랑하는 시리즈가 결말을 보고 나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려고 하니 쓸만한 아이디어가 안나오더랍니다. 전 시리즈가 워낙에 평가가 좋았기 때문에 후속작을 아무거나 낼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마 고생들 상당히 했을 겁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모집시에 받아놓은 포트폴리오(이력서만이 아니라, 신입사원 능력을 보기위해 게임기획서도 받았던 모양입니다)중에 눈에 확 띄는 것이 하나 있더랍니다.
"이걸 게임화 하면 쓸만하겠다"라고 느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기획서를 채용을 한 것인데..
문제가 되는것은 "기획서만 채용"하고 그 기획안을 가져온 입사지원자는 내 팽개쳐 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런 쪽 포트폴리오는 물론이고 만화나 소설가를 지망하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신입사원 모집이 됐던 신작 모집이 됐던간에 처음 응모시에 보낸 작품이나 아이디어는 회사측으로부터 반환이 되지 않습니다.
일단 자기들에게 제출된 물건이니 자기들 것이라는 거지요. 실제로 이런 경우 지금도 많고, 또 지금 설명할 것 처럼 기획자는 내팽겨쳐버린 후에 회사측에서 이 아이디어를 이용해 먹는 일은 게임계만이 아니라 만화계나 소설계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었습니다.

뭐 당시 이 기획안을 제출했던 입사지원자 분께서는 나중에 자기 기획이 멋대로 게임화 된 것을 알고 노발대발하며 그 회사를 고소하려 했으나, 일단 법적으로 그 아이디어를 회사가 이용해 먹는것은 아무 하자가 없고, 또 개인이 그러한 회사를 상대로(그런 회사라면 대부분 전속 변호사까지 고용하지요) 재판 걸어서 이길수가 없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를 해야 했답니다.
뭐 그 분은 지금도 그 회사라면 이를 갈고 있는 실정인데 그거야 지금 하려는 이야기완 상관이 없으니 넘어가고...

어쨌든 (법적으론 하자가 없지만 실질적으로) 사기까지 쳐 가며 아이디어를 뽑아온 건 좋은데, 이 아이디어가 말 그대로 포트폴리오용의 단순 기획서였던 것이 문제였지요.
기획자 본인이 있었다면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완성시킨 후 제작팀들의 의견을 모아서 수정작업을 거칠 수 있었을 텐데, 기획자는 야멸차게 차버린 후 제작팀들로만 모자란 부분을 수정할려니 그게 잘 될리가 있겠습니까?
물론 운이 좋아서 제작팀에서 그 기획을 보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도 있습니다만, 이 당시엔 그게 안됐다더군요. 뭐 늦게라도 그 기획자를 다시 초청을 해서라도 내용을 완성시켰으면 또 몰라도 신입사원을 더 받기도(즉 해당 기획자를 뒤늦게나마 채용하는), 그렇다고 외부 협력자로서 초빙하는 돈도 아까웠던 그 회사는 끝내 있는 내용만 가지고 밀어 붙이고 맙니다.
결국 반쪽짜리 기획만 가지고 게임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여기에 모종의 사건(이 사건을 이야기하면 어느 회사인지 단번에 알아차리실 것이므로 넘어가겠습니다)이 겹치면서 이 게임은 많은 유저들에게 기대감만 증폭시켰다가 완전히 대실패로 끝난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초기 기획안이란게 이렇게 중요한 것이지요. 해당 게임의 전체적인 틀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인데, 이 초기기획안이 확립이 안되니 거의 죽을상이 되어버린 그 분...
저희들로서야 남의회사 일이고 하니 뭐 더이상 끼어들 여지도 없고 해서 그냥 위로만 하고 끝났습니다만, 그 뒤로도 몇번인가 그분이 회사를 찾아오실 때마다 점점 더 망가져 가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갑자기 완전 부활한 모습으로 싱글벙글 거리면서 그분이 찾아오셨더군요.
드디어 기획안이 통과됐나 보구나.. 라며 물어봣더니 역시나! 고생한 끝에 겨우 기획안을 완성시키고 OK사인까지 받았다더군요. 그래서 물어봣지요.
문제가 안 될 선에서라도 어떤 기획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만 그 대답이...

"뭐, 하도 안돼서 답답하고 속상한 김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리니지2의 시스템 그래도 배껴다가 올렸더니 OK 해 주더라고"

...... 예? 리니지2 시스템을 그대로 배꼈다니요? 그런데 그게 통과가 됐어요? 아니 댁의 회사 윗분은 온라인 게임 제작사 사람이라면서 리니지2도 몰랐답니까? 그거 그대로 내면 표절이라고 욕먹는거 아니예요?
등등의 질문을 했습니다만.. 뭐 이미 통과가 됐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물론 그 제작팀은 그래도 양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도 내에서는 리니지2와 다른 부분을 집어넣기 위해 노력했고, 게임이 완성된 후에도 리니지2와는 전혀 다른 패치를 해 가면서 다른게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기본이 리니지2의 배껴먹기라는 점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는 것이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회사 윗대가리 입장에서는 위험도 높은 새로운 아이디어보다는 차라리 이미 성공한 게임 내용 배끼기가 더 매력적이었고 수익성이 있어 보여서 뻔히 표절임을 알면서도 채용을 했다더군요.
실제로 그 회사 말고도 다른 여러 회사들이 "표절임을 알면서, 또는 몰랐지만 이러한 게임이 먼저 다른곳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점을 알면서도 수익성, 즉 돈을 위해서 눈 딱 감고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가장 유명한 넥슨이 그 대표적인 기업일려나요?
솔직히 넥슨이 하는 짓 보면 그 회사는 뭐 상대적으로 귀여운 편에 속합니다만 어찌됐든 표절은 표절이니...

물론 국내 게임 제작사가 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채용하려고 노력하는 회사도 많고, 또 그런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회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거의 포화상태에 가까운 국내 게임제작사들이 위험부담 높은 새로운 시스템의 게임을 제작하는 것 보단 이미 확실히 성공한 게임들의 시스템을 모방하는 사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이 상당히 안타까운 것 역시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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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엔 다시 콘솔쪽 이야기와 잡지사 뒷이야기들로 해 볼까 합니다.


ps. 뭐 혹시나 하는김에 지금 찾아봤습니다만, 그 게임은 아직도 잘 돌아가고 있나 보네요.
ps. 아, 그리고 이건 부탁입니다만 제 글을 보시고 "아, 어떤 회사의 어떤 게임 이야기를 하는건지 알겠다"라고 눈치 채신 분들이 계실수도 있을텐데, 알아 채셨다 해도 어떤 회사의 어떤 게임인지 직접 이름을 밝히는 일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니까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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