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숲속에서의 나의 기억 -1-

엔초비 작성일 07.06.27 0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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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누군가 저의 글을 재밌게 읽어준다는게 이렇게 기쁜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잠도 안오고 해서 만화책(피아노의 숲)읽다가 잠깐 들어와 봤는데 몇일사이에 정말 많은 리플들이 달려있더군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론이 길어지지 않도록 바로 써내려가겠습니다.

 

 공포 영화좋아하십니까? 저도 즐겨보는 편은 아닙니다만, 가끔 무서운 영화가 땡길때가 있죠.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섬뜩한 귀신영화도 무섭고 사지가 절단되는 고어물이나 슬래셔 무비도 무섭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실 공포는 보는 순간 보다도 그후 잠자리에 들기전 혼자있는 시간에 더 크게 찾아옵니다. 어느 것이 더 큰 공포다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어둠속에서 인간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원초적 불안감은 시각적, 청각적 자극에 의한 공포못지 않게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이야기는 2005년 여름. 전에 말했던 살인사건이 해결된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비오는 날 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날은 곧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낮부터 부슬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밤이되자 돌연 억수비가 되어 천둥 번개까지 치면서 괜시리 사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비가와서 그런지 주취자 행패에 관한 신고도 없고 지령실(여러분이 112신고를 하면 신고센터를 거쳐 해당되는 경찰서 지령실이 무전으로 사건을 인계받습니다.)이 조용했습니다. (참고로 대부분 지령실과 상황실은 붙어있습니다.) 신고가 없으니 딱히 할일도 없어 컴퓨터로 지뢰찾기나 하면서 시간을 떄우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시간 경찰서 내의 모든 당직 근무자들이 비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을 겁니다.  

 

 한참 프리셀과 지뢰찾기를 하다보니 금새 10시가 되었고 저는 3시간의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위해 내무반으로 향했습니다. 내무반에 올라 가기전, 홀로 민원인 휴게실에 앉아 담배 한대피며 밖을 내다보니 비가 오는지 안오는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컴컴한 어둠이 저를 노려보고 있는듯 했습니다. 문득 얼마전 겪은 살인사건의 남자와의 기억이 떠올라 오싹한 기분에 몸서리를 치며 서둘러 담배를 끄고 내무반에 올라갔습니다. 출출하니 잠도 안오고해서 불침번을 서던 후임녀석과 뽀글이를 해먹고 침상에 누우니 몸이 노곳노곳 해지니 금새 잠이오더군요. 그리고 다시 새벽 1시, 근무를 마저 스기위해 졸린눈을 비비며 상황실로 향했습니다.

 

 상황실에 올라가보니 상황실직원, 당직 상황실장 할것없이 전부 뻗어 있더군요. 여전히 신고가 없었나 봅니다. 저도 같이 앉아서 한참을 꾸벅꾸벅 졸고있는데 지령실에서 지방청 신고센터로부터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얼른 뛰어가서 무전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답하는 소리에 지령실 직원은 그제서야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더군요. 저는 속으로 비가 이렇게 오는데또 어느 놈이 집에 안들어가고 술먹고 행패일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인계받은 사건은 뜻밖에도 자살의심자 발행. (자살 의심자란 말 그대로 자살을 할 것으로 의심 추정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정말로 웃긴 사실은 어디 찜질방에가서 곤히 자고 있는 사람도 그의 가족이 평소 행동이 이상하다며 자살이나 하지않을까 걱정된다고 신고하면 자살의심자 발생 사건으로 접수되어 신고받은 입장에서는 어떻해서든 일단 출동을 하고 봐야합니다. 자살 의심자 사건은 대부분 가족의 오해로 인한 한바탕 소동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인계받은 사건은 아예 유서까지 써놓고 나간 남자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유서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산업재해로 인해 한쪽팔을 잃은 남자가 그 후로부터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우울증 증세를 보여 매일같이 부인과 자식들이 위로했지만, 끝내 금일 자정 잠에서 깬 부인이 남편의 유서를 발견, 신고함.

 

 유서 내용에는 부인과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어느 산으로 간다는 내용까지 적혀있었습니다. 신고접수를 받고 지령실 직원은 무전으로 인근 지구대와 치안센터의 순찰차들 출동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당직 상황실장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보고를 받은 당직 상황실장은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는듯 보였습니다. 저는 내무반에서 고이 자고 있을 녀석들을 떠올리며 '쯧쯧쯧 짜식들 고생좀 하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당직상황실장의 입에선 예상했던 말이 나왔습니다.

 

상황실장: 5분대기대도 출동시켜.

         나: 그럼 벨 누르겠습니다. (저는 속으로 '미안하다 애들아, 내 의지가 아니다'라며 벨을 짧게 4번 눌렀습니다.)

상황실장: 아! 그리고 자네.

         나: 상경 000.

상황실장: 자네도 얼른 옷갈아입고 같이 나가게. 정문에도 근무자 1명만 남기고 전부 내보네.

         나: ...

 

 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짝대기 세개 달고 상황실 요원으로 발령 받은 이후 출동의 마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나가라니. 그것도 이렇게 깜깜한 새벽, 미칠듯이 퍼붓는 빗속에서 산속을 수색 할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습니다.

창밖에는 약올리기라도 하는듯 번쩍거리며 번개가 치고있더군요. 저는 황급히 내무반으로 올라가 기동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출동 차량(마이티 화물칸ㅠ_ㅠ)에 올라탔습니다. 지금쯤 무전으로 상황을 전달하고 있을 녀석이 차에 올라타니 후임들과 몇몇의 고참들이 놀란듯이 저를 쳐다봤습니다.

 

고참: 넌 뭐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저도 가고 싶어서 가는거 아닙니다.

고참: 참 너도 여러가지로 한다. ㅋㅋㅋㅋㅋ

   나: 글쎄. 저도 가고싶어서 가는거 아닙니다. -_-;;

고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치라이트와 우비를 양손에 한가득 든 후임녀석들이 차에 올라탄후, 곧 시동이 걸렸습니다. 이윽고 시커먼 비속을 헤치며 출동차량이 달리기 시작했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채 고참들은 마냥 신나서 껄껄거리고 쫄병녀석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이따금 번쩍 거리는 번개가 알수없는 불안감을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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