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져리와 머져리. 마지막.

hyundc 작성일 15.07.19 22: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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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농장에서 나올 때 까지 코카콜라 녀는 말이 없었어요.

 

혼자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어서, 분위기상 말을 걸 수도 없고.

 

결국 사슴 농장을 나올 때 까지 저는 그녀 어머니와 이런저런 잡담을 했습니다.

 

제가 낯가림이 심해서 처음본 사람과 친해지기 힘든 성격인데 그녀 어머니는 참 털털 하시더군요.

 

직설적이고 솔직한 코카콜라녀 성격이 그녀 어머니를 닮았던 것 같습니다.

 

그녀 어머니가 저희 집에 도달해 저를 내려줄때까지 결국 그녀는 한마디도 안했어요.

 

얘가 왜 화가 났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녀가 갑자기 화난 듯 하자 그녀 어머니도 그녀 눈치를 보는 것 같고.

 

아무 말도 못하고 집으로 왔죠.

 

 

 

 

 

집에 와서 별 생각 없이 씻고 책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전화가 울려서 받아 보니 코카콜라 녀입니다.

 

삼십분 후에 집 앞에 오겠다고 잠깐 내려오라네요.

 

내려갔죠.

 

이번엔 샤워도 하고 청바지에 깔끔한 티하나 입고 내려가니 그녀가 왔습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저희 집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습니다.

 

 

 

커피를 시키고 한참을 말없이 있었어요.

 

여전히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제가 입을 땠어요.

 

 

어머니 참 멋있으시더라. 미인이시고, 성격도 좋으시고.”

 

일단 미안해.”

 

?”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미안 하다니 뜬금없이 뭐가 미안 하다는 건지.

 

아무튼. 일단 미안해.”

 

그녀가 커피 잔에 담긴 얼음을 빨대로 휘휘 저으며 말합니다.

 

뭐가? 오늘 새벽에 찾아 온 거? ...., 괜찮아. 잠 좀 덜자면 어때. 괜찮아.”

 

라고 겸연쩍게 웃으며 말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바짝 들어 내 눈을 바라봅니다.

 

일단, 이제 걱정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나중에, 일단 해결하고 내가 다 말해줄게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날 밤부터.

 

아파트 복도에서 나던 괴소리가 안 났어요.

 

느낌상 그랬는지 어쨋는지 모르지만 확실히 밤에 신경 거슬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를 헤꼬지 하려는 일련의 소동들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괴롭힘을 당했던 공포심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코카콜라 녀와 만난 지 이주가 그냥 지나갔어요.

 

연락이 한동안 오지 않게 되자 슬슬 제가 궁금해집니다.

 

무슨 일 있나? 이따 연락이나 한번 해볼까 싶은 찰나 그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잠깐 얘기 좀 하자더군요.

 

저녁에 만나 저희 동네 한강 고수부지로 향했습니다.

 

 

고수부지 뚝방 길에 앉아 그녀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 줍니다.

 

 

 

코카콜라 녀와 최화정녀, 청바지 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 이었답니다.

 

여자들은 흔히 그러잖아요

 

남자들은 사춘기 시절 친해지면 서로에게 육두문자로 친밀감을 표시 하는데 여자들은 좀 다르다고 하더군요.

 

셋중 청바지 녀는 독립성이 강해서 혼자 이것저것 잘 해 나갔는데, 최화정녀는 그게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최화정녀의 공부가 조금 모자란 것 같으니 코카콜라 녀가 도와주고,

 

학교 끝나고 밤에 집에 갈 때도 청바지 녀가 최화정녀 집에 먼저 바라다 주고 집에 가고.

 

그녀들에게 반한 사춘기 남학생들이 그녀들을 쫒아 다닐 때도 코카콜라 녀가 다 해결하고.

 

 

그러다 보니 최화정녀는 코카콜라 녀를 아주 많이 의지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이학년 시험기간때 자기 집에서 최화정녀와 같이 공부하다 같이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뭔가 기분이 이상 하더래요.

 

설핏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가슴을 속옷 안으로 최화정녀가 만지고 있더랍니다.

 

처음엔 그냥 잠결에 손이 올라간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답니다.

 

확실히 손에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만졌다네요.

 

이상한 건 그 상태에서 그녀도 조금씩 정체를 알 수 없는 쾌감이 들어 그대로 더 깊이 진행 됐답니다.

 

그때부터 둘이 연인 관계 비슷한 상태 였대요. 섹슈얼한 관계까지 포함해서.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코카콜라 녀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있었던 반면, 최화정녀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눈을 돌리거나 다른 남자에 좋은 표현을 쓰면 난리가 났었다는 군요.

 

그런데 듣다보니 뭔가 얘기가 이상 합니다.

 

왜냐하면 저한테 처음 대쉬 했던 날,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던 게 최화정 녀 였거든요.

 

얘기를 들어 보아 하니,

 

대학을 진학 하고 얼마 안가 코카콜라 녀가 이런 관계 더 지속 하지 말자고 이야기 했답니다.

 

그랬더니 최화정녀가 난리 난리가 났었다는 군요.

 

칼들고 너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둥.

 

그러다 둘이 합의를 본게,

 

그럼 네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면 한번 만나 봐라. 자기와 관계를 끊지 않는 조건으로 만나 보는 건 허락 하겠다는 조건 이었 답니다.

 

그 대상이 왜 하필 나 였냐고 물어 봤더니, 그날 술 마시는데 건너편 남자가 웃는데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더 랍니다. 그래서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웬지 자기를 구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더 랍니다. 그런 예감은 드는데 웬지 슬프더래요. 그래서 자기가 최화정녀에게 말했답니다. 나 저 남자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 그런 게 어디 있어. 누구나 웃는 모습은 다 예뻐. 그리고 구하긴 뭘 구해. 내가 슈퍼맨도 아니고제가 짐짓 웃는 얼굴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쯤, 제 감정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뭐랄까, 제가 그동안 코카콜라 녀를 여자로 안 봤던 이유가 대가 아주 쎄보이고, 좋은 집안에, 좋은 학벌에, 미모에. 이런 모습들 때문에 좀 거리를 뒀던 건데, 그녀 어머니를 만나는 시점부터 감정이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 했습니다.

 

, 얘가 의외로 참 해맑구나.’ 라든지

 

제게 돈을 준다던지, 얼굴 보자고 했던 게 정말 순수하고 직설적인 성격 이어서 그렇구나

 

하는 연민 비슷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최화정녀와 왜 친하게 되었는지 말을 이었습니다.

 

저번에 내가 호텔에서 방에 영가가 보인다고 했던 말 기억나?” 라고 합니다.

 

갑자기 그 말을 하니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습니다.

 

그녀에게 처음 이상한 영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 한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답니다.

 

집에서 자다가 새벽에 물을 마시러 부얻으로 향했는데 부얻에 누군가가 빙글빙글 같은 자리를 돌고 있더 랍니다.

 

처음에 가족 중 누군가가 부얻에 있나 싶었는데,

 

처음 보는 사십대 남자가 자기 집 부얻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더래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거리면서.

 

그때 그녀가 소리 지르고 기절하고, 가족들은 다 뛰어 나와서 들쳐 업고 병원가고.

 

지금은 그나마 봐도 놀라거나 하진 않는데 살면서 그게 어마어마한 고통 이었다네요.

 

사실 그 문제로 엄마랑 여기저기 용하다는 무속인 들도 많이 찾아 다녔답니다.

 

그런데,가봐야 뻔 하죠 뭐, 네 딸 신 내렸다. 신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이 엘리트 집안에 통하겠습니까?

 

그냥 집안에서는 쉬쉬 했대요.

 

하지만 이상하게 최화정녀와 같이 있으면 그런 일이 없었다네요.

 

자기는 처음에 최화정녀가 생명에 은인 같았답니다.

 

그런데 저를 처음 본 순간 웬지 저하고 같이 있으면 최화정녀가 자기를 지켜주듯 제가 지켜줄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 근데 너 나랑 있을 때 귀신 봤다며?”

 

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녀 말에 의하면 저와 같이 있던 그날 영가가 보이기에 자기도 아 이 남자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대요.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서 영가들을 자세히 바라보니 영가들이 저를 보고 덜덜 떨고 있더 랍니다.

 

평소 그런 일이 생기면 자기 보고 희죽 희죽 웃거나, 짖꿏은 상대로 장난을 치는데 어쩐 일인지 저와 같이 있으니 영가들이 피하려 하는 게 역력히 느껴지더래요.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아 내가 가지고 다니는 호신불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희 모친이 항상 그때그때 호신불을 챙겨 주셔서 저는 항상 호신불을 지갑이든 어디든 챙겨 다닙니다.

 

뭐 제가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하니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더군요.

 

그래서...........미안해라고 그녀가 말합니다.

 

? 뭐가?” 제가 말하는데 바람이 스윽 스쳐 지나갑니다.

 

무덥고 습한 여름날이었는데 어째서 바람은 그다지도 차가운지요.

 

그녀가 얕은 한숨을 내 쉽니다.

 

아니, 어쨌든. 너한테 이상한 일 겪게 해서

 

태풍이 다가옴을 알리는 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에 제 마음도 는실난실 춤을 주고, 찰랑이는 그녀 머릿결이 제 얼굴 곁을 스치는데 라벤더 향기가 드리웁니다.

 

뭐가 미안해. 미안할 것도 많다. 아냐.” 제가 별것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런 일 없을 거야. 걱정 하지 않아도 왜.”

 

가을이 첫발을 디디기 아직 먼 계절인데, 마음속에 강쇄 바람이 스쳐지나 갑니다.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그녀 시선이 가로수 불빛으로 총총히 빛나는 강위 윤슬들을 향한 채 말을 이어 갑니다.

 

이런 말하기 염치없지만, 너 내가 만약에 계속 나랑 인연을 이어 가자고 하면, 그러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조금 이상하고 말하기 힘든 과거가 있지만, 네 옆에 있겠다고 하면.........”

 

그녀가 말을 멈춥니다.

 

저도 하릴없이 흑석동편 올림픽 대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 마음이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물음표들로 뒤엉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참으로 슬겁지 못하게,

 

그녀가 그 말을 하는 그 순간조차 그녀의 집안, 너무 뛰어난 학벌, 부담스러운 미모 따위만으로 마음이 잔뜩 어지러워 졌어요.

 

그것 때문에 선뜻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녀가 제게 듣고 싶었던 해답은 전혀 다른 문제들 이었는데 말이죠.

 

멍청하게 그저 한강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 얼굴도 바라보지 못한 채로 말이죠.

 

아니다. 미안해. 이런 말 못들은 걸로 하자.”

 

그녀가 말을 끊자, 그녀와 저 사이에 은하수를 비끄러져 지나가는 침묵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 그녀가 일어섭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일어서 뒤로 걸어가기에 매점이나 화장실을 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십 분이 지나고, 삼십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저도 천천히 일어나 집으로 향합니다.

 

 

 

 

 

그 뒤로 정말 이상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저게 아무 말 없이 뒷걸음질 쳐 떠나갔듯, 일련의 일들도 소리도 없이 뒷걸음질 쳤어요.

 

 

그 날 멍하게 집에 들어갔다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엄청난 후회가 밀려 왔습니다.

 

처음에는 바람에 찰랑이는 강가 파도처럼 조그맣게 일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저 먼 배래에서 어마어마하게 크나 큰 너울로 변해 제 마음을 후려 쳤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저는 입대를 했습니다.

 

 

입대 전까지 그녀에게 계속 전화를 했었지요.

 

몇 번은 받지 않았고, 몇 번은.......

 

미안한데, 우리 애가 전화 통화 하고 싶지 않다네. 이거 어쩌지?” 라고 겸연쩍어 하시는 그녀 어머니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많이 허무 하시죠? 제가 그랬잖아요. 이번 이야기는 100프로 실화로 쓰겠다고.

 

그냥 있었던 일 그대로 가감 없이 쓰면 끝이 원래 많이 허무 합니다.

 

처음 쓸 때만 해도 무서울 줄 알았는데, 막상 쓰고나니 별로 무섭지도 않고 망작이네요.

 

죄송합니다. ㅜㅜ

 

그 후로 그녀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만, 아마, 저를 괴롭히지 않는 조건으로 다시 최화정녀와 관계를 지속 했을 거라 생각 합니다.

 

젊은 시절 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머져리 같은지, 이런 소중한 인연을 그냥 스쳐 지나 보냈습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글만 써도 한 없이 쓰겠네요.

 

문제는,

 

다른 인연들은 생각 할 때 마다 어릴 때 다 그런 거지 뭐라고 피식 웃어 넘길 수 있는데, 이런 식의 인연들은 회한으로 남아 계속 저를 괴롭힙니다.

 

 

 

길고 지루한 글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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