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인사

eboni 작성일 16.07.16 03: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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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무서운 글일까? 라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은 글이라고 대답할것 같다.

 

난 귀신에 대해서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말하고 싶다.

 

생명이 다하고 난 이후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상이면 그것이 더 무섭지 않을까?

 

어떤 존재이건 괜찮으니 무언가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얼마나 커다란 행복이겠는가?

 

어쨌건 살아가며 2~3번의 기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자 한다.

 

때는 1996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이야기다.

 

당시 스무살이던 나는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었는데 한통의 삐삐가 울렸다.

 

보통 모르는 번호가 오면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왠지 그 번호의 생소함이 불길함을

 

담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나는 잘못된 호출이길 바라며 연락을 취했었다.

 

몇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난 후 전화를 받은 것은 수혁 형이었다.

 

"어. 형 오래간만이에요. 왠일이세요?"

 

형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답했었다.

 

"강재야. 여기 을지병원인데 신혁이 곧 내려갈거야. 인사하러 와야지"

 

"아.. 네. 네. 알겠어요."

 

덤덤하게 답했다. 왜인지 그래야할것 같았고 더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무덤덤한 말투와 달리 심상치않음을 느꼈고 내 시야는 너무나도 좁아져 있었다.

 

택시를 서둘러 잡아 타고 아무일도 아닐거라고 되내이는 머릿속과는 다르게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고가 난거겠지? 요양을 하기 위해 이제 내려간다는 이야기겠지?'

 

인사하라는 말과 내려간다는 말을 연계시킨 내 결론은 어딘가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있고

 

그래서 요양을 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그런 추리로 나를 달래고 있었다.

 

'크게 다친 것이 최악의 상황이어야해. 그래야만 해.'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병원을 찾은 나를 수혁이 형이 안내한 곳은 장례식장이었다.

 

'왜... 왜 이쪽으로 가는거야. 응급실이 밑에 있는거야?'

 

그리고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되는 곳에 내가 알던 신혁이 형의 사진이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었다.

 

세상이 비틀리듯 내 시야의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믿기지 않는 일을 나는 믿어가야했고

 

수용해야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며칠간 나는 몇번이고 정신을 잃기를 소망했고 그렇지 못했기에 오롯이

 

너무도 크나큰 슬픔을 받아내야했다.

 

장례가 치뤄지는 3일 동안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며 끝나기를 바랐으나 그 슬픔은 나눠지지 않는것이었다.

 

혹시나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싶어 잠겨있는 시체보관소의 틈을 붙잡고 움직이길 소망하고 소망했다.

 

그러나, 죽음이란 정말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었고 가장 좋아했으며 존경했던 선배는 그렇게 떠났다.

 

넋을 잃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몇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고 거의 쓰러져 있었다.

 

나와 형의 사이를 알았던 가족들은 내 기분전환을 위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었고,

 

나 역시 모든 것을 잊기를 바라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던 때였었다.

 

몇번이나 꿈에서라도 다시 한번 만나기를 바랐으나, 그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도 조금씩 일상으로 복귀하기 시작했고 슬픔도 감당할 수 있을만큼

 

바래져 있을 즈음 드디어 선배를 꿈에서 만나게 되었다.

 

 

비탈길을 걸어올라가자 선배가 나뭇가지로 바닥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는데

영락없이 할일이 없을때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한 어린아이의 끄적임 같았다.

 

"형. 뭐해요?"

 

그제서야 형은 나를 보고 웃음 반 서운한 반으로 이야기한다.

 

"강재야. 나 너무 심심했잖아. 네가 왔었어야지."

 

"응? 심심했어요?"

 

"그래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떠나요?"

 

형이 세상을 떠난 것을 잊고 있떤 나는 의아함을 표하지만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 말과 함께 잠에서 깨었던 나는 참 묘한 꿈이라 생각하며, 그래도 오래간만에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이 이상한 일을 확인해야 할것 같아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여덟시가 되기를 기다려 나는 형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진아. 나 어제 형 꿈을 꾸었는데, 뭔가 좀 이상해서 걸었어"

 

"응? 왜?"

 

"형이 나보고 왜 안 왔냐고, 심심하다고 하더라고."

 

그러자 수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오빠. 나 지금 소름 돋았어. 설마 어제 49재인거 알고 그런건 아니지?"

 

지금에서야 49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 스무살이었던 나는 49재가 무엇인지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던 때였다.

 

"엄마가 강재 너무 힘들거라고 그래서 연락 안했는데 오빠가 기다렸었구나. 그냥 부를걸. 가족들만 모여서

 49재 치뤘거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형의 고향집으로 내려가기로 마음 먹었고 며칠 후 그 곳을 찾았다.

 

늦긴 했어도 그렇게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49재 이후에 몇년간은 형의 자리가 절에 있었기에

 

그거라도 보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놀랐다.

 

 형을 만나러 가던 길은 꿈에서 보았던 비탈길과 선배가 놀고 있던 그 장소가 있었기에...

 

나는 개념조차 없었던 49재의 정확한 날에 형의 꿈을 꾸었고

 

한번도 오지 않았던 길을 꿈에서 미리 보았던 것이었다.

 

 

 

가끔 나에게 있었던 이상한 일들을 과학적으로 풀어보고자 생각할 때가 많지만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몇몇 일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서두에 말했듯이 나는 늘 소망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길 소망하며

 

미지의 세계가 있기를 소망하며, 우리만이 있는 것이 아니길 소망한다.

 

 

 

 

다른 글들에 비하면 임팩트가 부족하지만 등장인물들이 가명인것을 제외하면 제 체험담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이야기일수 있겠지만 당시 저에겐 너무나 기이한 경험이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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