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의 아폴론

latteup 작성일 18.09.09 09: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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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해군기지가 있던 나가사키현의 사세보시를 배경으로 하는 동명의 원작 청춘 만화가 영화화 됐다. 당시 재즈가 유행했었고, 일본 사람들에게는 격동의 시대이자 전공투가 한창이던 부분들이 합쳐진 시절과 장소가 배경인 셈이다. 한국으로 치면 70년대 이태원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청춘물과 실사화 영화를 많이 맡았던 미키 타카히로 감독은 여기에 그 시절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집어 넣고 우정과 음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청춘드라마를 강조했다.

 


그래선지 인물들의 관계도가 전형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외지에서 와서 지식을 전파하는 역할과 투쟁중인 선도적 인물 그런 인물을 중심으로 따르거나 보호하는 인물들, 저항의식을 재즈라는 음악으로 표현하고 즐기는 인물들, 당시의 환경에 영향받은 가짜 가족의 관계들, 미군으로 대표되는 외지인들과 성당, 상징적인 혼혈 등 원작에서부터 이어져 온 은유적 설정들이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흔한 일본 실사 영화들이 그렇듯이 인물들이 만화적으로 그려지고 만화적 상황으로 연출되어 있는편이다. 시종일관 과장된 감정을 연기하거나 극적인 상황과 우연이 남발되며, 재즈를 연주하는 장면처럼 과장미가 지배적으로 쓰였다. 원작의 영화화가 그렇듯 방대한 이야기의 한계도 엿보이는 편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포인트를 맞췄지만 급격하게 변화와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려는 무리수도 보인다. 다시 말해서 음악 영화에서 끝내지 않고 청춘물 성장영화까지 밀어부치려다 정작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면서 길어지는 부분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전반적으로 감싸고 있는 당시의 감성어린 학창시절 분위기들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레코드판, 공중 전화, 종이컵 전화기, 나무 책걸상 등 아날로그 시절의 복고풍 향수들이 가득하고 디테일한 당시의 풍경과 모습들이 화면을 풍성하게 채운다. 이는 앞서의 의미있는 상징적 캐릭터들과 어울려 그 자체로서 시대적 의미를 갖게 하는 포인트를 드러낸다. 만화 출간 당시의 시대적 설정 묘사에 대한 반응들처럼 말이다.

 


고로 '언덕길의 아폴론'은 일본의 시대적, 장소적 특성을 통해 청춘물을 그려내면서 간접적으로 그것에 담긴 의미들을 되새김질 해보게 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대부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감성이 위력을 발휘한다. 전후 활황과 여러 이념들이 꿈틀대며 교차되는 그 시기 말이다. 따라서 '언덕길의 아폴론'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들일지도 모르겠다.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음악의 신을 만나 환희하게 되는 것처럼. 겪은 다음에야 추억이 즐거워지는 것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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